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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 키, 가족,아들, 후손, 봉오동 전투 쉽게 정리

by 썬리버 2021. 8. 18.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101주년, 홍범도 장군이 세상을 떠난지 78년이 되었는데 장군이 드디어 8월 18일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우리나라 영웅 중 한분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공부를 할때 홍범도 장군, 봉오동 전투가 생각나는데요. 가장 외울게 많은 일제 강점기 파트에 등장했던 인물 중 한분이죠. 오늘은 홍범도 장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홍범도 장군 유해 돌아오다.

홍범도장군안장
홍범도 장군 안장(연합뉴스)

지난 광복절,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국내로 봉환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8일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최고의 예우를 상징하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홍장군이 일생을 보냈던 카자흐스탄의 추모화인 카네이션과 우리나라 조화인 국화가 함께 꽂힌 화환을 홍장군 앞에 헌화했습니다. '애국지사 홍범도의 묘'라고 새겨진 비석에 안장되었는데요. 장군이 계셨던 카자흐스탄 흙과 우리의 땅의 흙이 함께 뿌려졌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유언을 남겼었는데요. '내가 죽고 우리나라가 해방되면 꼭 고국에 데려가라' 였는데 78년만에 우리나라로 오게되었습니다.

 

유해가 고국으로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카자흐스탄과 수교한지 1992년부터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이 추진되었었는데요. 20년이나 또다시 걸린 이유는 여러가지 사연이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죠. 홍범도 장군은 아직도 카자흐스탄 동포사회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그리고 북한의 평양 송환 요구도 카자흐스탄 정부의 빠른 결정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출생지는 평양입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에서도 자기네 땅에 안장을 할 생각이었던 겁니다. 한국과 북한에서 서로 유치하려고 하다보니 마찰도 생기고, 조정이 안되어서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 보기싫어서 여기 그냥 둬라라며 우리가 모시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 후손이 모두 세상을 떠난 것도 송환이 늦어진 이유중 하나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북한과의 관계도 유화적으로 바뀌게 되어 그런 과정속에서 유해가 우리나라로 봉환되게 된 것입니다.

 

홍범도 장군, 봉오동 전투 간략 설명

홍범도네이버인물정보
홍범도 장군(네이버 인물정보)

홍범도 장군은 한말의 독립운동가(1868.8.27~1943.10.25)인데요. 일명 범도(範道)라고도 하며, 호는 여천(汝千)입니다. 만주 대한독립군의 총사령군이 되어 일본군을 급습하여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독립군 본거지인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최대의 승전을 기록하였으며, 청산리 전투에서는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였습니다. 그 후 항일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여 대한독립군단을 조직, 부총재가 되었으며, 고려혁명군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올해는 봉오동 전투,청산리 전투 전승 101주년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중국 길림성 봉오동 골짜기에서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와 야스가와(安川)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최진동 부대가 일본군 정규군을 대패시켜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킨, 항일 무장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전과 중 하나입니다.

 

홍범도장군의 키, 그리고 가족
홍범도 유해 수습과정에 참여한 박채원 한성대 외래교수는 유골의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았다고 했는데요.

장군의 키는 190cm의 큰키에 기골이 장대하셨던 생전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유골이 수습되었다고 합니다.
키크기로 유명한 180cm였던 김구선생보다 10cm 더 크다니, 당시 한국남성의 평균키는 163cm였는데 거의 2m큰키로 홍범도장군이 빠르게 말을 타면서 적진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포스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집니다.

홍범도 장군 가족들은 현재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홍 장군의 부인 단양이씨는 1908년 3월 함경남도 북청에서 남편의 의병 활동을 빌미로 일경에 체포돼 취조를 받던 중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습니다. 또한 홍범도 장군 장남인 홍양순 선생은 1907년 북청에서 홍범도 의병부대에 들어가 이듬해 함남 정평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순국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자손이 없습니다.

홍범도가족사진
홍범도 장군 가족사진



아무쪼록 무려 78년만에 고국의 땅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광복을 맞아서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조국에서 편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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